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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황홀한 일탈 - <오아시스를 만날 시간>, 전리오 지음



나의 샘은 서서히 말랐다. 감성의 샘 말이다. 그 샘은 사춘기 때에 가장 깊었다. 넓었다. 나의 육체는 그 감성의 샘 아니, '감정의 바다'를 견뎌내지 못했다. 휘청거렸다. 질풍노도라 했던가. 나는 끝없이, 침잠했다. 육체의 명령은 감성의 명령에 압도당했다. 술에 취한 듯 어지러운 시절이었다. 언제부터인가는 그 감성이 '지나치다'라는 생각조차 마비되었다. 내겐 모든 게 정상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정상이었던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스무살 이후 나의 감성은 급속도로 말라갔다. 이별을 겪고, 사랑하는 이를 먼 곳으로 떠나보내면서 감성이란 무릇 쓸모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갔다. 이성의 늪이 감성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 변화란 매우 무시무시한 것이어서, 나는 오들오들 떨며 방관자로서, 패배자의 심정으로 모든 것을 목도해야 했다. 정점은 군대였다. 군대는 내 감성을 '모조리' 앗아갔다. 그곳에서 '감성'이란 아주 사치스러운 것, 비효율적인 것에 불과했다. 감성은 총을 들 수 없고, 명령을 곧이 곧대로 따르지 않으며, 부대 내부에 우울을 전파하기 때문이다. 나의 감성은 기가 죽고, 그 자리에 이성이 싹을 트자 나는 도저히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육체 그 자체만이 남게 되었다.

전역 이후 곧장 사회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학비를 벌어야 했다. 정확히 전역 7일만에 나는 모 대기업에 계약직 사원으로 들어갔고, 半사회인으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군대를 겪어냈으므로 어려운 것은 없었다. 그러나 공허했다. 군대에서 피폐해진 나의 감성을 회복시키지 못 했다. 그곳엔 가마우지처럼 똑같은 '검은 양복'차림의 '직장인'들이 있었을 뿐이다. 반복적인 생활, 똑같은 옷, 똑같은 표정. 그들은 그것이 멋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현기증이 났다. 아니 구역질이 났다. 구획된 사무실. 구획된 사고. 구획된 인간. 모든 것이 천편일률적이며 동시에 배타적이었다(이런 곳에 내가 적응을 하고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소름돋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전리오의 저서 <오아시스를 만날 시간>을 받아들곤 눈물이 쏟아졌다. 구차(苟且)하다고 생각해, 울지 않아 온 시간이 얼마였는지. 아주 예측하지 못한 지점에서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그것은 갑작스런 위안에서 터져나오는 서러움이었다. 눈물을 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누가 그랬어?"하고 다정스레 한 마디하면, 아이는 서럽게 울고마는 것이 그와 같은 이치였다. 많이 컸다고, 세상에서 취득하기가 가장 쉽지만 까다롭다는 '군필'자격을 얻었다고, 나는 어른이라고 자부하던 이때에 정말이지 '애' 같은 감정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뭐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건 뭐고,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건 뭔지에 대해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pp.30)"


이런 생각, 한 번쯤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이 지긋지긋한 일상을 떠나 야반도주해버리고 싶은 욕망, 누구나 갖고 있지 않을까? 특히, 도시인들이라면 말이다. 이 삭막한 시멘트 빌딩이 과연 나를 품을만한 곳인지, 어제도 입고 오늘도 입은 이 양복이 과연 나의 진정한 모습인지 고민하지 않아본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안다. 이 현실이 실상이 아니라는 것을. 가상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을 극복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긍정한다. 낙관하고, 순응한다. 잘 될 거라고, 잘 될 거라고. 자신의 직장을 박차고, 그러니까 양복을 벗어던지고 피아노를 배우고, 우연찮게 글래스턴베리로 떠나는 주인공 역시 이런 말로 이 소설 아닌 소설을 시작한다.

"삶의 불확실성을 대해는 태도 중의 하나는 현재를 낙관하고 긍정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잘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낙관이라는 덕목은 나처럼 모험을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저 앞날을 위해 나를 응원해 주고 싶을 뿐이다.(pp.31)"

주인공은 과감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 보아하니 처자식이 없다. 솔직히, 그래서 부담 없이 뛰쳐나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지사지로 생각해보자. 당신이라면, 처자식이 없다고 다니던 직장을 일거에 때려치울 수 있겠는가? 퇴직은 용기가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른바 '돈줄'을 끊어버리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고, 비도덕적이다. 일부는 그것을 '신성한 노동의 의무'를 져버렸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하지만, 기실 '돈 버는 행위 혹은 돈을 벌어주는 행위'를 포기 했기 때문에 부정하다라는 말이 더 옳다. 각설하고- 여기서의 용기란 퇴직 후에 감내해야할 기회비용에 대한 용기이다. 그 기회비용이란 돈과 타인의 시선일 것이다. 주인공은 과감하게 그것을 박찼다. 대리만족이라고 해야하나,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류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삶에 회의를 느낀 주인공이 직장을 그만 두고,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 우연히 세계 최대의 록 페스티벌 '글래스턴베리'에 가게된다. 그곳에 가는 유일한 목적은 '오아시스'를 보는 것이다.  글래스턴베리에서 헤어진 여자친구를 만난다. 여자친구가 사고로 인해 기억상실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여자친구는 결국 기억을 회복한다. 이런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엮고 있다. '소설 형식'이라는 면에서만 보자면 대단히 아마추어적이고 작위적이지만, 작가의 참신한 의도라고 생각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여자친구가 기억상실이라고 해서, 남자친구였던 사람이 못 알아본 것은 얼마전 '점 찍고 변신한' 막장 드라마보다 더 작위적이다. 그러나 문제 삼지 않는다.) * 앞으로 <오아시스를 만날 시간>을 칭하는 대명사는 '소설풍'으로 하도록 하겠다. 엄연히 말해서 소설은 아니다. 꾸며낸 이야기 일 뿐. 


이 소설풍은 나름 음악적 구성 양식을 취하고 있다. 각 장(章)을 'track'으로 부르며 모두 14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첫머리에는 그 장의 이야기를 상징하는 음악의 제목과 해당 곡의 가수가 인쇄되어 있다. 음악 자체와 내용은 관계가 없다. 다만 '제목'과 '가사'가 변용되어 스토리에 녹아들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이 '일탈'을 결심하는 track 1의 '테마곡'은 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이다.



의문의 남자, '데이비드'가 등장해 일대 변혁을 예고하는 track 2의 테마곡은 Rage Against The Machine의 'Wake up'이다. 꿈속에 나타난 '그녀'가 "검은 토끼를 따라와. 자, Wake up."(pp.42)이라고 말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곡이 테마곡이 되었다.



'그녀'의 정체가 드디어 밝혀지는 track 3의 테마곡은 역시, Oasis의 'Live Forever'이다. 앞서 밝혔듯이 주인공이 글래스턴베리에 가는 목적은 사실 'Oasis'에게 있다. '그녀'가 열렬히 좋아하던 밴드였기 때문이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그는 일탈을 선택하고 글래스턴베리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유튜브에는 이 글래스턴베리에서의 라이브 공연을 제공하고 있다.



데이비드가 주인공에게 이해못할 훈련을 시킨다는 내용의 track 4의 테마곡은 The Beatles의 A hard day's Night이다.

"힘든 하루였어요.
개처럼 뼈 빠지게 일했죠.
힘든 하루였어요.
통나무처럼 뻗어서 자야겠어요.
하지만 당신이 기다리는 집에 오면
당신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저는 편안해진답니다."(가사 中, pp.86)



'헐크 호건'이란 아이디의 사람을 알게 되고, 그 사람과 글래스턴베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는 track 5의 테마곡은 AC/DC의 'Black In Black'이다. 헐크 호건의 정체는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내가 돌아왔으니까!"(가사 中, pp.110)


영국으로 가는 여정과 '이치가와 씨'와의 만남을 그린 track 6의 테마곡은 John Lennon의 Imagine이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의 테마곡 중에 처음으로 내용과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track 7에서는 드디어 주인공이 글래스턴베리에 도착하는 장면을 그린다. 이 track의 테마곡은 The Rolling Stones의 Shine a Light라는 곡이다.



track 7 이후에서도 다양한 테마곡과 이야기가 전개된다. track 8에서는 Suede의 Beautiful Ones가 테마곡으로, '헐크 호건'이 '여자'였음이 밝혀진다. track 9에서는 Coldplay의 Fix you가 테마곡으로 쓰였고 헐크 호건과 주인공 사이에 복잡미묘(?)한 연애의 징조들이 관찰된다. 드디어 track 10에서는 이 두 남녀 간의 육체적 교감이 이루어지며, 테마곡으로는 Julie Delpy의 A Waltz For A Night(아래 영상)이 쓰였다. 'A Waltz For A Night'. 이 곡은 듣고 가자. 좋다.(笑)



이어지는 track 11에서는 Radiohead의 No Surprises가 테마곡으로 쓰였다. 이 장은 음악사적으로 매우 묵직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첫째는 마이클 잭슨의 죽음, 그리고 두번째는 오아시스의 해체가 그것이다. 저자가 Creative Note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두 사건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이 소설풍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이 소설풍 자체가 픽션이기 때문에 글래스턴베리 공연 직전에 해체된 것은 아니다.(마이클 잭슨은 아시다시피 2009년 6월에 갑작스레 죽었다.)

"2009년 8월 28일,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열리는 록 엉 센 페스티벌의 마지막 순서는 오아시스의 무대였다. 그런데 공연을 불과 두 시간 정도 남긴 시점에 리더인 노엘 갤러거가 밴드 탈퇴를 선언하고 공연장을 떠났다. 당일 공연은 물론 이후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으며, 밴드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track 12에서는 The Beatles의 Till There Was You가 테마곡으로 쓰였다. 이 track에서 헐크 호건은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고, 주인공은 우연히 인디언 노인을 만나며, 돌아와서는 헐크 호건의 <Live Forever>(오아시스 曲) 기타 연주를 듣는다. 주인공에게는 아주 익숙한 곡이다. 어떤 까닭으로 익숙한지는 직접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track 13에서는 U2의 With or Without you를 테마곡으로 사용했다. 황홀했던 글래스턴베리에서의 체험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떠나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track 14에서는 헤어졌던 연인은 서로를 다시 깨닫고 서로를 기다린다. 테마곡은 Jason Mraz의 I'm yours이다. track 14은 이런 말로 매조지를 짓고 있다.

"지금 지구 끝에 서 있는 어떤 여인에게 우주가 끝날 때까지라도 해 주고 싶은 게 바로 이 말이다. 사랑합니다."(p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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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는 이에게 "당신 심장이 생생하게 뛰고 있음을 느껴본 게 언제였습니까?"하고 묻고 있다. 소설적 성취를 떠나, 이 책이 우리에게 '해방감'이라는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떠날 준비가 되었는가? 그래, 떠나라. 일탈을 실행하라. ■

★ 이 소설풍의 모티프가 된 사건들 - 앞서 말했다시피. 이 책은 완전한 논픽션이 아니다. 실화에 기반을 둔 소설이다. 작가는 책의 끄트머리에 이야기의 모티프가 된 사건들을 적어놓고 있다.

1. 작가는 2009년에 글래스턴베리를 다녀왔다.
2. 2005년 7월 7일 아침, 출근 시간 무렵 런던 시내를 달리던 지하철과 버스 등 네 군데에서 연속적인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한국인 사망자는 없었다.
3. 11번 트랙에서 인용한 것과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