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스크랩] 어릿광대로 산 식민지 예술가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페터 풍케 지음·한미희 옮김/한길사·1만원
지난 9월의 가을장마로 책 30여권과 알토란 같은 엘피(LP) 40여장이 빗물에 젖었다. 난생처음, 물에 젖은 책갈피를 한 장씩 뜯어가며 페터 풍케의 <오스카 와일드>(한길사, 1999)를 읽었다. 우리들에게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란 소설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를 폭죽과 같은 성공 가도에 올려놓은 것도 그 소설이다. 하지만 그는 시·평론·동화를 거의 동시에 집필했고, 워낙 한국 독자들이 희곡에 문외한이라 그렇지 다섯 편의 희곡을 쓴 극작가이기도 하다.
1854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와일드는 고향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뒤,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로 진학했다. 그 시기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신사조가 영국을 술렁이게 하고 있을 때로, 젊은 와일드는 단번에 이 교리의 전도사가 되었다. 까만 비단양말과 반바지 차림에 끝부분이 레이스로 처리된 비단조끼, 넓은 칼라가 달린 하얀 와이셔츠에 눈에 띄는 초록색 넥타이, 그리고 단춧구멍에 백합이나 해바라기를 꽂은 그의 모습은 여태도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댄디를 설명하는 일화로 등장한다.
1884년에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았던 와일드가 동성애 성향을 갖게 된 원인과 시기는 수수께끼다. 감옥에서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결혼생활의 반복적인 일상과 단조로움, 지적인 자극의 부족이 그의 정신과 기질에 전혀 맞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동성애 성향은 결혼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는 인습의 틀 속에서 자기 성향을 누르려고 했지만, 도리어 결혼생활의 권태가 잠재되어 있던 동성애 성향을 추동했다. 차라리 독신으로 마음껏 살았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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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치부심, 와일드가 더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이 책 말미에 자세한데, 바로 그 부분은 지은이의 와일드에 대한 평가와 직결되어 있다. 관심 있는 독자의 일독을 바라면서, 최근에 나온 아주 모범적이고 월등한 서평집 <반대자의 초상>(이매진, 2010)에 테리 이글턴이 쓴 와일드에 대한 평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와일드에 대한 이글턴의 평가는 “상류 계급의 기생충”이라는 굉장히 냉소적인 기조 위에, 양성을 오가는 성 정체성과 영어의 관습을 해체하는 재기발랄 언어유희, 삶에서 보여준 자기파괴적인 연기와 댄디즘 등 와일드의 모든 특징을 “식민지적 역위”로 단정짓는다. 곧 와일드는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인으로서 영국인의 위선과 성실을 조롱하고자 스스로 “공식 어릿광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장정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