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톺아보기

[서평]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플랭클

고만하이 2010. 10. 1. 12:00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정문 - "일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시련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저자 빅터 플랭클은 그것을 '시련의 불가피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길, 시련은 언제나 가치 있는 것이다. 아니, 가치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가치를 찾아야 하는 까닭은 간단하다. 인간은 의미(가치)를 좇는 존재이고, 따라서 그것이 곧 존재자성이며, 그것을 상실할 때 존재 자체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더욱 쉽게 말해, '의미'의 상실은 '죽음'을 뜻
한다.

  저자는 아우슈비츠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 인간성의 극단을 목격했다. 수용소 안의 포로들은 더할 나위 없이 누추했다.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빅터 플랭클 박사는 그 가운데에서 인간성의 놀라운 양면을 본다. 하나는 자포자기. 또 다른 하나는 의미의 성취.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전자는 자신의 둘러싼 상황에 좌절하고 끝내는 자포자기 하여, 심지어 '자신의 용변' 위에 누워 꿈쩍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살아야할 의미를 상실한 자'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후자는 이와 반대되면서 동시에 '성자'에 비견된다. 이들은 '그 시련 속에서도 의미'를 찾은 사람들이다. 시련 속에서 '의미'를 찾아낸 사람들은 살겠다는 의지를 끝내놓지 않는다. 외부로부터의 공격-예를 들면, 가스실-이 아니라면 그들은 제명보다 최소한 일찍 죽지는 않았다.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빅터 플랭클 박사는 '로고테라피'를 완성한다. 로고테라피(Logotherapy)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 'Logos'와 치료를 뜻하는 'Therapy'의 합성어이다. 다시 말해, 로고테라피는 핵심을 '의미'에 두고, '인간은 의미를 찾는 존재'로 간주한 정신분석의 한 학파를 말한다. 동시에 분석법이기도 하다.

  로고테라피는 '자아완성'은 오히려 '자아에 집착'할 때는 성취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신 '자아초월'의 상태에 이르면,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쾌락이다. 쾌락은 그 자체에 집착할수록 만족할 수 없다. 즉,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섹스 시에, 여성을 만족하려 할수록 남성의 스테미너 초라해지며, 오르가즘에 집착하는 여성 역시 오르가즘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이 빅터 플랭클 박사의 주장이다.

  자아를 초월하려면, 나에 대한 집착을 풀고 '나의 외부'에 온 정력을 쏟아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사랑이다. 저자는 '사랑'을 '인간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까지 말한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통용하지 않는다. 사랑할수록 사람의 실체는 드러난다. 그리고 사랑할수록 '자아'는 '완성'되어간다.

  결국 박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사람은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 의미를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가 아니라 '타자'에 집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랑이다. 2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는 통계청의 충격적인 발표가 공허하게 울려퍼지는 세상이다. 일독을 권한다. ■

[기억에 남는 문장 중의 일부]

pp.117 - 막사 안에서 검열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수시로 행해지는 행위는 위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수감자들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었다. 환자들에게 으믹이나 약 몇 알 더 주는 것이 도움이 되련만 검열관은 복도 중간에 지푸라기가 떨어져 있지 않은지, 이가 득실거리는 더럽고 다 떨어진 담요가 환자 발밑에 곱게 개어져 있는지에만 관심을 두었다. 수감자들의 운명?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pp.122 -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잇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pp.178 - 자살의 상당수가 바로 이런 실존적 공허 때문에 일어난다.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실존적 공허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pp.184 -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서만 얻어진다는 말이다.

pp.198 - 염세주의자는 매일같이 벽에 걸린 달력을 찢어내면서 날이 갈수록 그것이 얇아지는 것을 두려움과 슬픔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비슷하다. 반면에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떼어낸 달력의 뒷장에다 중요한 일과를 적어 놓은 다음 그것을 순서대로 깔끔하게 차곡차곡 쌓아 놓는 사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