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톺아보기

OX 인간형 - 45년 전 지식인의 개탄

고만하이 2010. 8. 19. 14:54


동아일보 1965년 12월 29일 자에 실린 영문학자 '오화섭' 선생의 글 



오화섭(吳華燮·1916~79)


오화섭
<연세대 교수, 영문학>

「프랑스」사람들은 바르고 고은말을 배우기 위해서 연극을 본다고 한다. 그들은 또 생각하기 위해서 극장에 간다고 한다. 미국의 어느 극평가는 「프랑스」에 머물러 있는 동안 초만원을 이룬 소극장 안에서 비오듯하는 땀을 씻어가면서 고전극을 즐기는 「생각하는 갈대들」을 보았다. 그는 이 생각하는 갈대들과 미국의 관객을 비교했다. 미국의 관객은 10분마다 웃어야 된다고 한다. 극작가는 이러한 관객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연극을 하고, 보는 배우와 관객을 「말하는 갈대들」이라고 이름 지었다. 두 대륙 사이의 차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유럽」사람들과 미국사람들의 특징을 단적으로 지적한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특히 최근 몇 해 동안 우리 사회에는 "생각하는 갈대들"이 줄어가고 웃기를 좋아하는 "말하는 갈대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 웃음마저 알맹이 없는 어설픈 우음이지만, 읽고 생각하기를 단념했을 때 눈과 귀만이 발달하기 마련이오, 머리는 "수업료를 돌려달라"라는 독일 소극에 나오는 「물장구」라는 인물처럼 텅빈 바가지가 되어야 한다. 지성의 특권이란 생각하는데 있고 생각한 것을 정리해서 옮길 수 있어야 할텐데 우리는 각자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해방 이후 소위 객관식 OX문제라는 괴물이 우리 청소년들을 「물장구」로 만들었지만 이 객관식이라는 것이 개개인의 실력을 알아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까지 OX화 해가고 있다.

오늘날 「라디오」, 영화, 「텔레이존」의 공세를 막아내기에는 생각하는 갈대들은 너무도 무력하다. 사실 시청각교육의 효력은 책을 통한 지식에 확신을 주는데 있기는 하지만 「시청각적 문화」는 비어있는 쌀독에 화려한 「비날」을 씌워놓은 격이다. 극소수의 생각하는 사람들이 고안해 낸 문명의 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물장구가 되어버린다면 차라리 반딧불 밑에서 책읽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마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