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톺아보기

[소설] 빛을 갈망하는 부나방처럼

고만하이 2011. 1. 5. 23:21


소설 『빛은 내 이름』(엘사 오소리오, 북스캔)의 후기

- '국제 엠네스티 문학상' 수상작

벨기에의 일간지 '르 스와르'(Le Soir)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과거에는 물론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독재의 본질을 알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군부독재를 오롯이 통과한 한국인이라면 관심을 갖을 수밖에 없는 평이다. 한국인에게 '독재'란 과거지사가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 엄연히 우리와 함께 작용하는 사회적 매카니즘(과거로부터 지속되는 그림자)이며 또한 격렬한 토론이 오가는 지점이 아닌가 말이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엘사 오소리오'의 소설 『빛은 내 이름』(북스캔)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속의 삶이 얼마나 부조리하며, 상식을 뛰어넘으며, 비상식을 일상화하는 데에 뛰어난지를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소설 속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작가는 웅변하지 않고, 설교하지 않으며, 선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단지 담담히 이야기할 뿐이다. 그러나 '거대한 부조리(거대담론)' 속에 존재하는 '일상'은 너무나 평범하고, 우리와 동일해 보이기에 슬프다. 

소설 속 소소한 면면들을 보자. 딸을 지극히 아끼는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납치를 해서라도 아이를 갖고 싶은 창녀가 있고, 국가 기관에 쫓기고 있는 여대생이 있다. 또한 도덕심과 양심이라는 것은 선험적으로 갖고 있지 않은 군인이 있고, 아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부농 등이 소설 속에 편린처럼 흩어져있다. 그들의 삶은 규정지어지기 전엔 너무나 평범하다. 인간의 삶이기에, 우리와 동일하다. 그런데 왜? 이들의 삶들이 덩어리 진 이『빛은 내 이름』은 비극적이란 말인가.

주인공 루스. 제목에 드러난대로 '빛'이라는 뜻이다. 소설 속에서 루스는 친아버지인 카를로스를 어렵게 만나 이렇게 말한다 : "루스라고 부르세요. 제 이름은 언제나 루스였어요. 전 제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모두 다 나쁘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빛'이라는 뜻을 지닌 제 이름 루스가 그 예죠."(1권 pp.20)

빛. 그 이름은 역설적이다. 이 소설을 아주 범박하게 요약하자면, '날 때부터 친부를 모르는 딸이 친부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루스의 인생곡정은 너무나도 서글프다. 친어머니 릴리아나는 반정부 투쟁을 하던 중 옥살이를 하다 죽었고, 태어난 후에는 아이를 너무나도 갖고 싶어하던 창녀의 군인 남편에게 강제로 입양된다. 그러나 다시 손자를 낳자마자 잃은 군인 남편의 상관에게 자신을 빼앗기고 만다. 그러나 스무살이 넘으면서 진실을 알게되고, 친아버지를 찾아나서게 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루스의 삶'과 동시에 그 루스의 삶을 굴곡지게 만든 '거대한 틀'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독재다. 모든 민중에게 있어야 할 권력이 하나의 인간에게 몰아드는 아주 비정상적인 체제가 '독재'다. 이 안에서 개개인의 삶은 억압되고, 억압되는 가운데에서 굴곡된다. 돌연변이가 속출한다. 독재의 독소는 일상의 평범한 가운데에서 온전히 드러난다. 일상 하나하나가 독재의 파편인 것이다. 이 소설은 분명 '루스'의 이야기지만, 이야기 전개에서 나타나는 여러 인물들의 군상은 '독재의 파편'이 된다. 이 파편에 맞은 사람은 성할 수 없다. 근원을 제거해야만 한다. 이 소설이 근원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