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선임하사의 등쌀에 못 이겨 썼던 글입니다. 네, 군 복무 중에 쓴 글이죠. 하하. 그 때 계급이 이등병이었습니다. 2008년 봄이었고요. 부대 내에서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가 주관한 '백범일지 독후감 대회'가 개최되었는데, 그 때 우연히 최우수상을 받았던 글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정말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백범일지를 첫 '도서 톺아보기'로 쓰는 데에 의의를 두고자 합니다. 스크롤의 압박에 주의하세요.:) * 옮겨 쓰다 보니 다소 길어서, 2개로 나누어 발행하겠습니다. |
창암의 작은 가슴이 지핀 애국의 불꽃,
백범의 몸을 심지로 삼아 조국의 빛이 되다
종종 눈물이 나곤 했다. 유쾌한 시(詩)를 읽으면서도 문득, 발랄한 음악을 듣다가 어디에서 내게 닿았는지 모를 우울함 때문에 문득, 한겨울 지하도 안에서 마주친 노숙자를 보며 또 문득, 서글펐다. 사춘기 소년처럼 모든 소리가 간지게, 모든 풍경이 미세한떨림을 갖고 찾아오던 시기가 있었다. 아마 그 시기가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던 그 경계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마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맞았던 초봄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창경궁 담벼락을 따라 혜화동으로 가고 있었고, 그곳에서 전과 다른 감정을 체험했다. 내가 그것을 목격한 것은 서울대병원 앞에서였다. 흰 상복을 입은 어느 여인의 통곡이었다. 그 풍경에 내 가슴이 아플 만큼 옥죄어왔다. 그때 나는 그전까지의 모든 서글픔 혹은 눈물들이 치기 어리다는 생각을 했다.

백범일지를 받아든 순간의 느낌이 그러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스무 살의 봄에 서울대병원 앞에서 흰 상복을 입은 여인의 통곡을 보았을 때와 같은 감상이었다. 때 아닌 감정이 내 가슴을 억눌러오는데, 나는 처음이 아니면서도 그 느낌이 퍽 낯설었다. 나는 백범일지의 표지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표지 가운데에 아로새겨진 '白凡逸志', 네 글자. 그리고 그 오른쪽에 박힌 백범 김구 선생의 존영. 단지 그뿐이었다.
백범일지의 첫 페이지를 펴들었다. 백범 선생은 책의 맨 앞에 <백범일지>를 쓰는 까닭 즉, 서문을 써놓고 있었다. 그 짧은 서문은 또한 그가 아들들에게 남기는 편지이기도 했다. 그 서문을 읽는 동안 가슴이 아리고 시렸다. 최대한 담담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써내려 놓은 그 글자들에서 나는 백범 선생의 고아하면서도 강렬하며 동시에 비장한 그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담담히 써놓은글에서 비범함을 느낀다는 것. 역설이지만 내가 느낀 사실이었다. 선생은 백범일지를 유서(遺書)라고 했다. 언제 죽을지 몰라 나이 어린 인과 신, 두 아들에게 남겨놓은 아버지의 유서. 망국의 백성으로서 응당 나서야 할 바를 알고 한 떨기 들풀 같은 목숨을 걸고 있다는 그 말씀. 나는 백범일지가 김구 선생이 자식들에게 남기는 유서이면서도 또한 대한의 백성들에게 선생이 남기는 격서(檄書)임을 직감했다.
백범 선생은 한없이 겸손했다. 당신 스스로의 외모를 더러 못 났다, 못 났다, 하시고 큰 인물은 못 될 상이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잘난 것이 없어 다만 바란 것이 마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하셨다. 우리가 다 알건대 백범 선생은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중국의 손문, 베트남의 호치민과 같은 한민족의 국부적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 존재라면 당신 자신을 어느 정도 포장하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설사 포장한다 하더라도 흠잡지 못할 터인데, 외려 백범 선생은 한 없이 겸손하고 솔직했다. 감옥에서의 추태, 속으로 품었던 사심(邪心) 등 구태여 드러내어 놓지 않아도 될 것들을 선생은 가감 없이 써놓아 한 치의 거짓도 쓰지 않으려 하셨다. "내가 만일 민족독립운동에 조금이라도 공헌한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만은 대한사람이면, 하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신 선생의 말씀을 곱씹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아명은 창암 혹은 창수였다. 백범 선생은 자신의 어릴 적을 소회하며 당신의 비범함을말하는 데에 주력하지 않았다. 외모는 못 났고, 체격도 뛰어나지 않다고 하셨다. 그러나 어린 창암은 행동했다. 선생은 어릴 적 자신을 미화하는 대신 자신이 걸었던 행적과행동들을 거짓 없이 써놓고 있을 뿐이었다. 고능선 선생에게 배운 척양척왜(斥洋斥倭) 정신, 변복한 일본인 육군 중위 스치다를 기지를 발휘해 치하포에서 죽인 사건, 그리고 척양척왜 정신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동학으로의 입교, 동학으로의 입교 후 병력을 이끌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화 등을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때 그의 나이가 10대 후반이었다. 내가 길거리를 걸으며 치기 어린 감상에 젖어있던 그 나이. 어린 김구, 창암은 전쟁터에 있었다. 백범 김구는 말보단 행동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나는 아래 구절을 떠올린다.
"... 작은 일 하나에도 양심을 본위 삼았고 사심이 발할 때마다 먼저 자신을 꾸짖지 않고는 감히 남의 잘못을 꾸짖지 못하는 것이 거의 습관으로 되었다. ...모든 일에 자기로서 비롯하여 남에게 이르는 것이 일상적 습관이 되어 있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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