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모래늪의 기억, 임세화 작, 2007 창비 신인소설상 수상작
임세화. 동대 문창과 졸.
실존주의 소설이란, 다름 아닌 존재를 부각하는 것이다. 나는 존재가 돋을새김처럼 분명하게,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리하여 소설의 본래 목적에 합하는 작품을 읽을 때면 쾌락 아닌 쾌감에 사로잡힌다. 사실, 소설의 존재이유는 '존재의 구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소설은 실존적이어야 한다. 막혔던 것이 뚫리고, 그 뚫린 자리에 공허함이 차오르는 순환이다. 내 쾌감의 근원은 그런 것이다. 이러한 순환을 수식하기 위해 '악'이 적합할지 '선'이 적합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내 '독서의 순간'마다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2007년 창비의 신인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하며 등단한 '임세화'의 '모래늪의 기억' 역시, 내 '독서의 순환'을 이어갔다. 위의 사진이 못내 맘에 들지 않았다. 아마 작가 본인도 맘에 들지 않았을 것 같다. 마침 동대미디어센터(www.donggukin.org)에 더 나은 사진이 있어서 가져왔다.
그녀의 필치는 분명 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했다. 시종 시니컬 하면서도 역설적 감수성이 흠씬 묻어났다. '사슴농장'이라는 배경이 신선했다. 작가 임세화는 마치 실제로 '사슴농장의 딸'이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디테일을 녹여냈다. 실제로 보지 않고 느끼지 않았다면 묘사될 수 없을 듯 보이는 문장들이 종종 등장했기 때문이다.
부인과 사별한 이후 보험금으로 사슴농장을 차려 달과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 그리고 어쩌다 식구 아닌 식구가 된 노파, 그리고 녹혈과 사슴고기를 먹기 위해 찾아온 외지인 가족, 그리고 노인들. 화자인 '딸'은 이런 모든 것에 구역질을 느낀다. 아버지의 씨가 아닌 다른 남자의 씨를 밴 '쉰 살' 엄마의 자살이나, 예전과 달리 무기력하며 곧 죽을 노인네처럼 구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살겠다고 '산 것'의 피를 그대로 뽑아 들이켜는 인간들의 꼴이나, 제 피며 뿔이며 모조리 빼앗기고도 무기력하게 우울증이나 앓는 사슴(갈록)이나, 그 모든 것이 역겨운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한 덩어리의, 응어리로, '나'를 앓게 한다. 여기서 제시된 에피소드들은 새롭지는 않다.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 '임세화'는 이것들을 마치 '사슴고기 무침'처럼 버무려놓고 독자의 식탁 앞에 올려놓는다. 직접 맛보고 느끼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소설을 더러 '화자가 뒤로 물러나있어 아쉽다', '좀 더 적극적으로 현상 타개에 나섰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문장은 쉽고, 이야기도 쉽지만, 가독성이 충분히 있고, 작위성도 배재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오바'하지 않는다.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지나치게 편집증적으로 분석할 필요는 없다. 꽤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다. ■ 창작과 비평 138호 2007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