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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에 실려있는 조금 황당하고 재밌는 글 - 한국기원설

고만하이 2011. 4. 27. 02:34
위키백과는 국가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객관적 시각으로 서술함이, 운영 원칙이다. 그런데 일본어판 위키백과에 실려 있는 이 글은 한국인인 내가 읽기에 어딘지 불편했다. 아래는 해당 글이다. 번역은 네이버 번역기를 사용했다(비문 등 다소 수정). 원문은 http://ja.wikipedia.org/wiki/%E9%9F%93%E5%9B%BD%E8%B5%B7%E6%BA%90%E8%AA%AC

韓国起源説 한국기원설

한국기원설이란, 한국의 개인·단체등이, 타국의 문화등의 기원·전파를 한반도에 요구하는, 근거 불충분하고 비합리인 언설군의 속칭. 한국기원론이라고도 한다. 연구자나 문화인이 개인적으로 주장하는 설로부터, 공적 단체가 정식으로 주장하는 설까지 다방면에 걸쳐, 일시적으로 매스 미디어로 유포되는 경우로부터, 계속적으로 국제적인 홍보 활동을 하는 경우까지 여러가지이다. 특히, 일본 문화나 중국 문화가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概要
개요

한국 기원설의 주된 대상은 일본 문화와 중국 문화를 시작해 메소포타미아 문명·잉카 문명·서양 문명·생태계까지 다방면에 걸쳐, 유형·무형의 문화 만이 아니고 고명한 역사상의 인물등의 모든 분야가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사이비 과학으로부터 말 맞추기나 민간 어원, 일절 근거가 없는 것까지 다방면에 걸쳐, 한국내나 해외에서 넓게 유포되고 있는 설로부터 한국내에서조차 거의 수용되어 있지 않은 설까지 여러가지이다. 다만 한민족 우월 주의적인 시점에서 주장되는 점에서는 공통되고 있어 특히 일본 문화에 대한 기원설의 주장으로는, 코나카화사상과 공교육에 근거한 강한 대일 멸시의 시점에서 주장되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기원 주장은 한국 이외에도 존재하지만, 한국 기원설의 특이한 점은, 타국의 기원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 대상 분야가 넓고, 빈도도 높은 데다가, 선전 활동이 대규모로 국제적 영향력을 가져, 자민족우월 주의적이고[1], 문화의 발현, 혁신, 발전, 계승을 무시하고 있어[2], 현저하고 사실 오인이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2002년 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대한 검도 협회와 같은 국제 단체나, 조선일보·동아일보와 같은 대기업 매스컴이나, 학자나 유명 작가가 한국 기원설을 당당히 주장·보도하거나 한다. 또, 한국기원설을 기초로 영화가 만들어지거나 국제적인 이벤트가 개최 되거나 한다. 이것들을 통채로 삼킨 넷 기사·투고가 범람해 기성 사실화가 진행되어, 마침내 한국의 교과서에 기재되게 된다. 게다가 사실 무근의 기원설이 다른 기원설의 근거로 되는 등[3], 가설이나 희망적 관측에 근거한 허구가 「역사적 사실」로서 유포되고 있는 상황이 되어 있다.

한국 기원설이 언제쯤 시작되었는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세계에서 유명하게 되면 그 문화에 대한 한국 기원설이 주장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사무라이나 일본도나 벚꽃은 「야만스러운 일제의 상징」으로서 오랫동안 기피해지고 있었지만, 사무라이나 매년봄에 타이다르베이슨(아마도 Tidal Basin을 말하는 듯)으로 열리는 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의 왕벚꽃나무가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인식하면 대규모로 한국 기원설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대만에서 한국 기원설이 넓게 인지되게 된 것은 인터넷이 보급하기 시작하고 나서여, 일본에서는 「만화혐한류」등의 출판물의 영향도 크다. 중국의 넷 앙케이트로 한국이 「싫은 나라」 제1위로 선택되었지만 [4], 그 한 요인이 한국 기원설 에 있다고 하고 있어[5], 중국 국내에서 팽창하는 혐한감정에 대처하기 위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辛正承在(뭐라고 읽는지 몰라 그냥 놔둠) 주중 한국 대사에 지시하고, 일부 오보가 포함된 한국 기원설에 대한 해명을 중국 미디어상에서 대사에 시킬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게 되어 있다.

근년, 일본의 미디어에서도, 「마징가-Z의 해적판이 한국 작품으로서 한국에서 방송되고 있었다!? 또 유익뜻의 한국 기원설입니까(쓴웃음)[6]」 「한국측 카피 휴대 제조 메이커는 「스티브·좁스는 한국인이고, 원래 린고의 나무는 한국 원산이다」와 강경한 자세를 바꾸지 않은[7]」 등 짓궂고 사용되는 만큼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일본의 인터넷으로도, 이러한 기원 주장을 조선어로 「우리의」를 의미하는 「장점」을 걸쳐 「우리지날」이라고 야유하고 있다.이 「우리지날」이라고 하는 말은, 잡지등이 다루거나[8], 대학교수가 이용하거나 하는[9](정도)만큼 퍼지고 있다.비슷한 말에 「코리에이트」(korea+create)이 있다.

또 인물에 대한 한국 기원설의 일종으로서 한민족 우월 주의의 관점에서 일본의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물을 사실이나 근거로 기초를 두지 않고 재일 한국·조선인이다고 주장하는 재일 인정이 있다.

정보의 전파 구조로서는 음모론이나 체인 메일, 어떤 종류의 유언비어 와 유사해 어떤 종류의 권위주의를 촉매로서 확산되는 잘못된 정보의 전파 속도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의 설명이나 전달에 비대칭으로 다대한 정보나 증거의 제시가 필요한 구조가 있어( 「기원설」의 제시는 고들단정조의 수프레이즈인데 대하고, 그 반증을 위한 증명이 방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뜬소문의 확대가 폭발적으로 되는데 대해 정정 정보의 확산 속도는 둔한 것이 된다.

日本に対する韓国起源説の発生理由
일본에 대한 한국 기원설의 발생 이유

사대주의 소중화사상 유교 속국사
한반도의 역대 왕조는 장기간에 걸쳐 중국 대륙의 역대 왕조에 복속·조공 있어, 예를 들면 신라는 북제(북조)·진(남조)·수·당에 조공 해, 고려는 송·계단(료)·여진(금)·명에 조공, 바탕으로 복속해, 이씨 조선은 아키라·키요시에 조공 하고 있었다(청일 전쟁까지).이러한 역대 왕조의 상당수는 중국 역대 왕조에 의한 책봉을 받아(한반도를 중국으로 간주하는 기술의 항목을 참조), 한반도에서는 중화 문화에 대해서 비굴할 정도로 존경하는 사대주의와 스스로를 중화의 일부와 간주해 「열등한 주변 제국」에 대해서 우월한다고 믿는 코나카화사상의 시대가 길게 계속 된[10]. 그 후, 코나카화사상상으로는 열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본에 의해서 병합·근대화 되어 일본 문화가 대량으로 유입하면,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나 반일 감정이 퍼졌다. 이 때문에, 제이차 세계대전 후에 독립했지만, 국민 국가 형성과 국제적인 인지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자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근거한 아이덴티티가 부족하게 되었다. 거기서, 이미 세계적으로 인지도의 높은 일본 문화나 중국 문화등을 한국 기원과 표절하는 것으로, 국가 아이덴티티의 형성, 해외로부터의 인지 향상, 자국을 병합지화한 후에, 오랜 세월 대국으로서 군림해 온 일본에 대한 열등감의 극복을 동시에, 용이하게 완수하려 하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는[11][12].

또, 이러한 코나카화사상에 유교 사상이나 민족주의가 더해지는 것에 의해서「우월한 장남의 중국과 차남의 한국(조선), 열등한 삼남의 일본」, 「우월한 어머니의 한국과 열등한 기아의 일본」이라고 하는 인식이 발생해[13], 또,「선진적으로 문화적으로 우수한 조선이, 미개로 야만스럽고 열등한 일본에 선진적인 문명을 하사해 주었다.」, 「일본은 한국이 뛰어난 문화를 받아 들였을 뿐의 문화 열등국」 「(일본은) 유사 이래 한 장 업신여겨야 할 문화적 열등자」「모든 일본 문화는 조선에 원류가 있다」,「(쿠다라)백제인이 일본을 건국했다」라고 하는 역사관이 넓게 침투해, 일본 문화에 대한 한국 기원설의 온상이 되고 있는[14][15][16].

이러한 일본 멸시는, 일본 열도를 가리키는 「섬나라」라고 하는 말이 「열등하고 미개」라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부터도 방문해[17], 주일 한국 대사가 텔레비전의 인터뷰로 사용하기까지 되어 있는[18].또, 한국 매스컴도, 「쪽바리」 「웨놈」 「이르본놈돌」등의 일본인을 가리키는 모멸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해[19][20], 「고대에 한민족안의 질의 나쁜 범죄자를 「빠져 죽을 수 있다」라고 통나무에 묶고 바다에 흘리고 섬에 가까스로 도착한 것이 국제적인 안되어 사람의 저질 일본 민족의 정체다」[21], 「 「일본 원숭이」와 「쪽바리」, 어느 쪽이 일본인의 통칭에 적당한가?」[22], 「알몸으로 물고기를 잡아는 있던 사람에게 우리가 문화를 전해 주었는데 무슨 말을 하고 있어」[23]등으로 극도로 모멸적인 대일 논평을 일상적으로 실시하고 있다.이와 같이, 한국 사회 전반에서는 「한국인의 우수성」과「일본의 열등성·미개성·야만성」을 선동하는 경향이 강하고, 한국 기원설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양성되고 있다.

또, 자기 저서 중(안)에서 미즈노 šœ페는 한국의 「정」에 언급하고 있는[14].한반도사는 일관해서 외적과의 싸움의 역사(주변의 강국에 침략이나 점령되어 사대 하는 역사)이며, 「위대한 민족사」를 동경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고 있다.또, 한국 대중의 사이로, 「한반도사가 일제나 친일파에 의해 부당하게 왜소형화 되었다」라고 믿을 수 있고 있기 때문에(위해), 「식민지 사관으로부터 역사를 회복(복원)한다」라고 하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기원설의 주장이 매우 받아 들여지기 쉽고, 정통파의 역사학자가 위사나 기원설에 이의를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리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는[24].또, 일본인 학자가 기원설을 부정했을 경우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우익 학자」라고 상표를 쳐져 깊게 논의되는 것은 우선 없다.그 때문에, 한국의 학회에서조차 전혀 인정되지 않은가 의문시되고 있는 기원설이어도, 부정하는 언설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한국 대중에게 「사실」로서 인식되어 퍼져 가는 케이스가 많다고 하고 있다.

공교육
한국의 건국 당초의 민족주의는 「반일 주의」일변도로, 「일제에 대한 투쟁」을 내거는 것으로 민족의 유대를 양성하며 간[25].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기 저서 「국가와 혁명과 나」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우리 반만년의 역사는, 한마디로 말해 뒷걸음질과 결점 대강 침체의 연쇄사였다」
「고식, 나태, 안일, 기회주의에 나타나는 소아병적인 봉건사회의 하나의 축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민족사를 고찰해 보면 한심하면 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실로 일대 민족의 중흥을 기한다면, 우선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역사를 개신해야 한다.이 모든 악의 창고와 같은 우리 역사는, 오히려 태워 그에 적합한이다」
한층 더 자기 저서 「국가, 민족, 나」로, 이씨 조선에 도착해 다음의 말을 남기고 있다.

「4색당쟁, 사대주의, 양반의 안이한 무사 주의인 생활 태도에 의해서, 후세의 자손까지 악영향을 미친, 민족적 범죄사이다」
「오늘의 우리의 생활이 괴롭고 곤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마치 이조사(한국사)의 악유산 그 자체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와 함께 선조들의 발자국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되돌아 봐, 경멸과 분노를  아울러 느끼는 것이다」
박정희는 조선사에 있어서의 사대주의와 속국성을 자각해, 자기 저서 「한민족의 가야할 길」로 한국인의 「자율 정신의 결여」 「민족사랑의 결여」 「개척 정신의 결여」 「퇴폐한 국민 도덕」을 비판해, 「민족의 나쁜 유산」으로 해서 다음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26].

사대주의
나태와 불로동소득 관념
개척 정신의 결여
기업심의 부족

악성 이기주의
건전한 비판 정신의 결여
당파 의식
특권·엘리트 집단의식
박정희는 독재체제(유신 체제)를 확립하면, 상기와 같은 조선 민족의 문제점을 불식하기 위해서, 「민족의 중흥의 사명을 달성하기 위한 주체적 민족사관」에 근거한 「국적 있는 교육」을 내걸었다.


 

역사 교과서

상기와 같은 「조선 민족의 문제점」을 불식하기 위해서 행해진 「국적 있는 교육」에 근거한 한민족 우월 사관으로 편찬 된 한국의국정교과서하지만 한국 기원설을 가속시키고 있는 측면이 있다.교과서에서는,♠굽坪岵� 한국이 미개인 일본에 문명을 하사해 주었다1瀏릿鳴� 하는 역사관이 일관해서 강조되고 있어 일본에 대해서, 일본의 독자성이 강한 사회·문화나, 일본이 가장 영향을 받은 중국과의 동중국해 교역 루트나, 일본으로부터 외국에의 문화 전파가 존재하지 않을까와 같은 오해를 주고 있다.또, 한반도가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중국의종속국그리고 정치·사회·문화의 면에서 예속 하고 있었던 것에 대부분 접할 수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인이 「역사적으로 조선은 문화 선진국」이라고 하는 인식을 한층 강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27][28].

예를 들면, 초등학교의 사회과 교과서의 일본 관련에서는,

「(쿠다라)백제의 문화를 일본에게 전해 주었다왕인
「(삼국시대) 우리 선조는 발달한 우리 문화를 옆의 일본에도 가르쳐 주었다」
고구려의 문화를 일본에게 전해 주었다」
「지금도 일본인은, 왕인을 일본 문화의 선생님으로서 우러러보고 있다」

등과 한반도에서 일본에의 문물의 「수여」가 집요하게 기술되고 있는 한편으로, 일본에서 한반도에의 영향에 대해서는 「잔학성」이나 「야만성」이 과장되어 집요하게 기술되고 있어 「일본인은 문화적으로 열등」이라고 하는 인식 아래에서 일관해서 기술되고 있다 [29].초등학교4년생2학기, 도덕 교과서89페이지에는, 「한민족은 강인한 곳이 있습니다.중국 역대 왕조, 일본 등 주변의 나라들 화실 진하게 침략을 시도했습니다만, 결국은 모두 실패해 버렸습니다.(중략) 예를 들면한반도에 한민족은 아니고 일본이나 다른 민족이 있으면 곧바로 멸망했을 것입니다」라고, 여기에서는 「일본인이 반도에 살고 있으면 멸망하고 있었다」라고까지 명기되어 있다[30][31].

또, 고등학교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야마토족은 대개 토호쿠 아시아계통의 족속과 남양족 그리고 아이누족의 잡종[32]
「우수한 조선 민족과 열등한 일본 민족」
「동아시아의 문화적 후진국인 일본」
「한반도의 선진 문화를 미개인 일본에 가르쳐 주었다」
「근대화 이전의 일본의 문화는 모두 위대한 선진 문화를 가지는 한반도로부터 유래한 것」
「야비한 일본은 언제나 한반도를 침략하고 재물을 빼앗아 갔다」

(와)과 시사하는 기술로 일관되고 있어 「동아시아에서 문화적으로 열등했던 일본」이라고까지 명기되어 있다[33][34][35].

다만 실제는 왕인은 일본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유교와 한자를 전했다고 여겨지지만, 당시의 한반도의 「문화」를 전했다고는 쓰여지지 않았다.또, 왕인은 일본측의 자료에게만에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한국은 「고사기」의 「응신천황의 명령을 접수 (쿠다라)백제가 헌상 한 인물」이라고 하는 기술이나 「일본 서기」등의 일본의 대국상이 방문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날조」라고 격렬하게 부정하고 있어, 자료의 형편의 좋은 부분만큼 채용해(왕인에 관한 기술이나,다카노노 니이가사하지만 무령왕의 자손이다고 하는 기술 등) 그 이외는 무시한다고 하는 「군것질(체리·피킹)」를 해, 이중 기준을 보이고 있다.덧붙여 실제의 왕인은 고구려에 멸해졌다락랑군한인계의 학자[36]인지, 귀화한 복수의 귀화인 학자가 한 명의 존재에 정리한 것은 아닐까 말해지고 있다.또, 한국의 공교육으로 배우고 있는 「선진적인 조선과 미개인 일본」이라고 하는 논설은,조선 통신사하지만 못 쓰고 남겼다닛토장유가(으)로의 기술이나, 당시의 일본의 경제나 사회나 문화의 모양에서 봐도 결코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서는단군 신화(을)를 사실로서 게재해,▤箕訃돛� 역사는 중국의 역사보다 길고, 세계 최고의 하나�(와)과 가르쳐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있는 면도 있다[37].이 점에 대해서,일한 역사 공동 연구 위원회의 일본측 멤버이다이노우에 나오키(은)는, 「한국의 교과서가 조선 민족의 시조로 여겨지는 단군의 신화를 그대로 인정하는 기술을 하고 있는 것은, 자료 고증에 근거하는 결론인가 의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38].

경인교육대 학교의 박쵸르히 교수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민족 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타민족을 폄기술도 많아, 특히,일본인(은)는 문화적으로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일관해서 기술되고 있다」라고 비판해[29], 초등학교4년생2학기의 도덕 교과서6667페이지에는, 기자와 외국인이김치의 맛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어, 김치의 맛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외국인은 「네, 잘 먹습니다.한국의 김치는 매우 맛있습니다.일본의 김치는 비교로도 되지 않네요」라고 기술되어 한국의 김치의 우수성을 소개하기 위해, 일본의 김치를 업신여기는 것은, 타문화를 무시하는 것과 동시에 타문화에 대한다편견(을)를 조장 하기 쉽다고 비판하고 있다[30].또, 교과서는, 「선진적인 한국이 미개인 일본에 문명을 하사해 주었다1瀏릿鳴� 하는 역사관을 강조하지만, 조선이 중국에서 받은 영향은 대부분 접할 수 있지 않았다.예를 들어, 고려시대전 시기에 걸쳐 이민족이귀화한 숫자는23만8000사람 너무 달한다[30].귀화했다한족(은)는 국제 정세에 밝고,문예에 사나워지고 있어관료에 많이 진출했다.귀화했다발해인계단(와)과의 전쟁에 참가해 큰 공적을 세웠다.최무선에 화약 제조 기술을 전한 인물 이 겐도 중국,강남지방 출신 귀화인이다[30].귀화했다여진족(은)는 북방 정세를 정보 제공하거나 시로를 쌓거나 군공을 세워 고위 관직이 된 사람도 있다.이씨 조선(을)를 건국했다이성계(은)는 토호쿠 츠라이데몸으로 이 지역의 여진족을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했다.개국공신이었던 리지란은 이 지역 출신의 여진족지도자로서 동북방면의 여진족과 조선의 관계를 독실로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이씨 조선 시대, 동북방면의 영역에서 영토 확장이 가능했던 (일)것은 여진족포용 정책에 격려할 수 있었던 것이 크다[30].박쵸르히 교수는, 한국의 사회 교과서가 과도하게 민족 중심적으로 서술되어 이것들 귀화인의 존재와 문화적 영향에 대해 교과서는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30].또, 초등학교6년생1학기의 사회 교과서의 「하나에 단결한 동포」의 부분 「우리의 동포는 최초의 나라·고조선(을)를 세우고, 고구려,(쿠다라)백제,신라에 이어통일 신라(으)로 발전해 왔다」라고의 기술에, 박쵸르히 교수는, 「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을 세울 수 있기 전의 우리의 선조의 생활이 어느 같았던가 조사하고 있어 보자」라고 적어, 구석기, 아라이시기, 청동기 시대를 설명해, 전혀 구석기시대로부터 고조선에 이르기까지 같은 혈통의 민족이 이 지역에 살아 왔는지와 같이 기술되고 있다」라고 비판하고 있다[30].

[편집] 한국 기원설을 보완하는 설의 존재

[편집] 문화 말살설

한국 기원설이나♣瞿뼈括� 야만성1瀏릿鳴� 하는 인식을 보완하는 주장으로서 「일본에 의한 한국 문화의 말살·약탈설」이 있다. 한일합방 시대나문녹·게이쵸의 역때, 일본이 한반도의 문화·문화재를 죄다 말살·약탈했다고 하는 것으로, 「현대의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는 문화도, 일본에 말살·약탈되기 전에는 존재했을 것이다」라는 전제로, 많은 한국 기원설이 주장되고 있다(예:종이접기).

검도(이)나유도(와)과 같이, 한일합방 시대에 일본이 한국에게 전한 문화(일제 잔재)에 대해서도, 「한국에 본래 있었음이 분명한 전통 양식이 일본 양식의 기원이었지만, 일제에 의해서 말살되어 일본풍에 강제적으로 개편되었다」라고 주장해, 호칭·복장·작법등을 한국풍으로 개변해 한국 기원